“당신은 누구예요?” 최민호가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김기범은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얼굴을 감싼 민호의 손을 쳐내며 뒤로 물러났다. 숨이 가빠오는 것 같았다. 민호는 크게 동요하는 기범을 보며 실의에 빠진 얼굴을 했다. 그 얼굴은 조금 슬픈 것 같기도 했다. 그는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깨알 같은 글자가 박힌 서류는 며칠 전 민호가 과학수사팀으로부...
책상 옆에 붙은 라기윤이 유난히 반짝거리는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최민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그의 눈도 따라 움직였다. 그러다 민호의 얼굴을 한번 보고 다시 그의 손길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종이를 팔랑팔랑 넘기던 민호의 손이 스윽 가까워졌다. 어어. 가까워지는 손을 따라 기윤의 눈이 몰렸다가 꽉 감겼다. 기어코 꿀밤을 한 대 먹었다. “아야.” “옆에 ...
최민호는 들고 있던 것을 과학수사팀에 넘겼다. 그가 건넨 커다란 지퍼백에는 간 한 덩이와 피에 절은 비닐봉지가 각각 들어있었다. “유일한 단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민호는 음절 하나하나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묵직한 책임감이 짓누르는 것처럼 말이다. 과학수사팀이 떠나고 민호는 자기 자리에 앉아서 목덜미를 주물렀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주물러가는데 두...
태민이 창문으로 들어선 기범의 방은 비어있었다. 장사하지 않는 날로 알고 왔는데 가게에 있나. 태민은 방문을 나서면서 그리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은 그대로 멈추었다. 주방 불이 대낮같이 훤했고, 식탁에는 음식이 담긴 플라스틱 그릇이 놓여 있었다. 식탁 가까이 간 태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인간의 음식이었다. 무엇인지 모를 음식은 먹다 만 흔적이 역력했다. 집...
“그렇게 됐다.” 20년 전 반장도 지금의 백태수가 했었던 말을 똑같이 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됐다. 한 소년을 잔인하게 살해한 개청동 살인사건은 미제로 마무리되었다. 소년의 배가 뚫리고 간이 없어진 엽기적인 사건이었지만 이렇다 할 단서도, 증인도 없이 수사는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백태수 형사는 그게 끝인 줄 알았다...
입을 맞춘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두 사람은 그저 입을 맞댄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입술을 타고 오는 따뜻한 온도에 사르르 녹을 것만 같았다. 시간이 꽤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입맞춤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끈끈하게 떨어지는 입술의 촉감 뒤로 밀려오는 건 민망함이었다. 민호와 기범은 입을 맞췄던 자세 그대로 서로의 눈도 쳐다보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다음...
태수는 민호의 눈동자에 거대한 불꽃이 이는 것을 바라볼 수 없었다. 잡았던 손을 놓은 태수가 민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최민호. 야, 최 형사.” “……아. 네, 반장님.” 눈에 초점을 잃었던 민호가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색이 파리하게 질린 게 영 상태가 좋지 못했다. 백태수는 언젠가 술에 취한 민호가...
“그렇게 됐다.” 백태수가 서류뭉치를 책상에 쾅 내리치듯 놓으며 말을 마쳤다. 그의 말에 강력반 형사들 모두가 멍청한 얼굴을 했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최민호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사건 파일을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말도 안 됩니다. 이대로 종결이라니요? 미제로 남겨둔다고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민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백태...
기범은 눈 밑의 피부가 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낯선 소파 끄트머리에 지는 해의 흔적이 닿아 있었다. 그늘 쪽으로 슬금슬금 몸을 피한 기범은 문득 자기 몸을 내려다봤다. 약간 넉넉한 회색 반팔 티셔츠와 검정 긴 바지 차림. 자신의 옷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적막한 사위는 온통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꺼진 TV, 신경을 좀 쓴 듯...
기범이 탄 차는 높은 빌딩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 입구 근처에 차가 도착하자 삼삼오오 모여든 아랑의 수하들이 뒷좌석 문을 대신 열었다. 기범은 차에서 내리며 구겨진 정장을 다듬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를 닮은 새빨간 정장이 구김 없이 펴지며 날렵한 선을 드러냈다. “모시겠습니다.” 기범의 곁으로 다가온 남자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기범은 들...
자정 막 지난 새벽, 출입문의 종을 딸랑 울리며 최민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바탕 손님을 치르고 난 뒤 설거지를 마친 기범이 웃는 낯으로 그를 맞았다. “오셨어요?” “공짜 밥이라는데 와야죠.” 민호는 언제나 앉던 자리로 가서 기범이 주는 물을 마시며 웃었다. 익살스러운 그의 말에 기범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식사 중이던 다른 손님 몇몇이 기범의 웃...
트위터 @Gamnim0120 메일 leann0120@naver.com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